top of page

열차전대 토큐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열람 시 주의해주세요.

어둠을 좀먹는 빛

흑색 빛은 빛인가, 어둠인가

<열차전대 토큐저>의 치명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한 사람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기 전에 [Alt]+[F4]키나 오른쪽 위에 있을 [X]버튼을 눌러 창을 닫아주세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읽지 않기를 추천드립니다.

 

 

 

스즈키 라이토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칠판은 학생들의 집중을 모으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칠판은 라이토에게 존재 의의를 부정당하고 있었다. 라이토는 칠판을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이다. 시계는 지금이 수업시간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회 선생은 칠판 위에 양면성을 적고 있었다. 톡톡거리는 소리는 라이토의 귓가에 분명히 다가갔다. 하지만 라이토는 듣지 않았다. 라이토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자, 그 소리는 머쓱해하며 사르르 사라졌다. 사람은 가끔씩 귀를 막지 않고도 귀를 막을 수 있다. 라이토는 시선을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빠르게 시간이 가서 하교시간이 다가오길 바라는 눈빛을 담아. 시간은 상대적이라고는 하지만 라이토의 시간은 지나치게 늘어져 있었다. 마치 어제 먹었던 치즈피자처럼.

별안간 큰 소리가 울렸다. 라이토는 정신을 퍼뜩 차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 아이들은 가방을 챙기고 서로 뭉쳤다. 그제야 라이토는 수업이 드디어 끝났다는 것을 인식했다. 뒷머리를 긁은 라이토는 가벼운 가방을 챙겨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에는 낙서만이 잔뜩 남아있었다.

학교를 떠나 역에 도착한 라이토는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열차는 약 10분 정도 남아있었다. 라이토는 음료수 하나를 뽑아 마시며 선로를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기보다는 긴장되었다. 그들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그때와 달리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그들은 과연 비난할까?

라이토의 생각이 중학생의 두뇌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졌을 무렵, 열차가 역으로 접근했다. 라이토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의아함을 느꼈다. 열차는 평소에 타던 스바루가하마행 열차와는 달라보였다. 하지만 안내판은 이 열차가 틀림없는 스바루가하마행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단색으로 칠해진 화려한 열차를 보던 라이토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모를 익숙함과 의아감을 지우지 못한 채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는 곧 문을 닫고 서서히 출발했다.

열차 안 쪽은 깨끗했다. 깨끗하다는 말에 사람의 흔적조차 없다는 말도 포함된다면 라이토는 다른 형용사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물 밀듯 밀려오는 익숙함이 익숙치 않은 탓에 라이토는 조심스레 가방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라이토가 자리에 앉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다가왔다.

“화끈하게, 실례합니다!”

승무원으로 추정되는 자는 카트를 몰고 다가왔다. 열차 내에서 카트를 몰고 올 자는 승무원 밖에 없을텐데 굳이 추정을 붙인 이유는 대상이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관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는 지나치게 로봇같았다. 인간이냐 로봇이냐 물어본다면 열에 열은 로봇이라고 지목할 만한 사람은 라이토를 보고도 태연하게 과자와 차와 도시락 중 무엇을 먹을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라이토는 얼떨결에 도시락 하나를 사 들었다. 승무원은 기뻐하며 도시락을 꺼내어 책상 위에 놓았다. 두 개를.

“어, 나 하나만 시켰…….”

“그럼, 화끈하게 실례했습니다!”

성질이 급한 듯한 승무원은 라이토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문을 닫고 옆 칸으로 이동해버렸다. 라이토는 입을 다물고 숨을 내쉬었다. 라이토는 적게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민하던 그는 화끈하게 두 개 다 뜯었다.

“그거, 내 거 아니야?”

양 쪽의 도시락에 있는 닭튀김을 동시에 든 라이토가 입에 가져다대기 직전 들은 소리이다. 튀김을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인 탓에 목소리를 쫓아 근원을 찾은 것은 동공 뿐이었다. 그리고 올려다본 동공은 틀림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이토는 튀김을 포기했다. 아마 그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 작은 기적에 경악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곳은 자신과 눈 앞의 사람 밖에 없었다,

아니, 자신 밖에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안녕, 나.”

“어, 나?”

둘의 말이 겹쳤다. 라이토의 앞에는 라이토가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인 라이토와는 다르게 조금 더 커보였다. 반면, 그 라이토는 검정색 중학교 교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라이토와는 대비되게도 어릴 적에 입었을 법한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붉은 라이토는 방긋 웃고는 검정색 라이토의 건너편에 앉더니 도시락 하나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잘 먹겠습니다!”

라이토가 경쾌하게 말했다. 라이토가 포기한 튀김은 라이토의 입에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라이토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너, 나야?”

다른 이유에서 불만스러웠던 게 확실한 듯 하다. 라이토는 불퉁하게 라이토에게 말을 걸었다. 순식간에 닭튀김을 전부 먹어버리고 밥을 입에 넣고 있던 그는 입에 있는 것을 전부 씹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랬기에 라이토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라이토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본 라이토는 입에 있는 것을 전부 씹고는 말했다.

“맞아. 나는 너야.”

라이토는 곧 키가 훤칠한 검정색 남자로 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라이토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그 남자는 한 쪽 입고리를 들고는 몸을 앞으로 향했다.

“아직도 반짝거리고 있냐?”

라이토는 ‘아직도’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왠지 이 모든 대화가 전에 몇 번씩은 오갔던 것 같다. 예전에 했던 대답과는 조금 질이 다른 대답이 라이토가 인식하기도 전에 튀어나갔다.

“불행히도, 아니.”

한 번 입에서 뱉고 나니, 라이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상상력을 잃었다. 잃어버린 상상력은 라이토의 반짝거림을 데리고 같이 사라져버렸다. 말하자면, 라이토는 반짝임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남자는 유감이라는 듯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댔다.

“뭐, 됐어. 너 말고도 세상엔 반짝이는 것이 많으니.”

라이토는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왜 화났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로.

“아니야, 아직 반짝일 수 있어.”

“확신해?”

분하게도, 라이토는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확신할 수 없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스스로조차 의심하여 기차에 오르기 전에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런 라이토를 다 안다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인자한 표정은 인상 쓴 표정보다도 잔인했다. 남자가 라이토의 어께를 툭툭 쳤다. 위로하듯이. 그에 라이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음식이 흐트러졌다. 젓가락 하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둘 다 그것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제트.”

라이토는 다시 자신의 입에서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에 대하여 놀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제트는 라이토를 바라보았다. 입에 머금고 있는 미소는 모욕적이게도 보였다.

“왜 부르나, 토큐 1호.”

“토큐 1……? 어릴 적에 했던 전대 놀이였던가.”

“그걸로 도피하기로 결정한거야?”

제트는 여전히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이번엔 라이토의 입에서 단어가 튀어나오지도, 머릿속에 저절로 단어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라이토의 앞에 있는, 제트라고 불리는 듯한 상대는 라이토의 대답을 바라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으며, 라이토는 대답했다.

“아마, 응.”

“나쁘지 않은 변명이네. 전대 놀이라.”

제트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변명한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역시 어른의 뇌는 너무 나약해. 초현실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니까? 별로 반짝거리지도 않는 상상력을 말이야.”

제트는 짐짓 설교하듯 말했고, 라이토는 그것을 잠자코 들어주기를 원했던 것 같아 듣고만 있었다. 아니, 아니었던 것 같다. 제트는 돌연 고개를 돌려 라이토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라이토?”

제트의 눈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어둠이 추상적이라고 한다면, 라이토는 그 사람에게 제트의 눈동자를 보여줬을 것이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킨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 그렇게 특이점으로 빨려들어간 빛은 더 이상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침식되고…….

라이토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숨을 너무 크게 들이쉰 탓인지 사레가 들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이번에는 고개를 숙여 쿨럭거렸다. 숨이 어느정도 진정되자 라이토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눈을 확실히 응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제트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다시 라이토가 있었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라이토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가 내뱉은 것은 숨과 말이었고, 불행히도 말의 분량은 반이 넘지 않았다. 그러자 라이토는 조금 신경질을 내며 라이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입술을 그의 귀에 바싹 붙인 채, 라이토는 말했다.

“빛을 어둠으로, 상상의 힘은 쓸모 없어. 그것을 버리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야.”

 

 

라이토는 열차에서 내렸다. 싹싹한 승무원이 손을 흔들며 라이토를 배웅했고, 라이토는 그 승무원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열차가 떠나고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되고, 라이토는 조금 더 쾌활하게 스바루가하마의 역을 둘러보았다. 떠날 때만 해도 작은 역이었는데 어느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모양이었다. 그는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활짝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릴 적에나 입었을 만한 붉은색 야구 잠바가 들어가 있었다. 라이토는 방긋 웃었다. 그 옷을 들어 입어보니 마치 어제 산 것처럼 딱 맞았다. 다시 가방을 멘 그는 활기차게 스바루가하마로 향했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상상력을 죽이고 어둠으로 가득차게 만들기 위하여.

bottom of page